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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REVIEW/영화

이런 아버지가 되고싶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by in사하라 2010.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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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태인들의 삶을 주제로 제작된 영화가 유독 많다. 아마도 그들의 삶이라는 것이 다른 민족의 그것에 비해 굴곡이 많았고, 극적이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유태인들은 종종 한국인과 비교되기도 한다. 아마도 우리네 정서의 '한(恨)'이라는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민족을 굳이 꼽으라면 바로 유태인이 될 것이다. 그들에게서 우리의 한을 찾아 볼 수 있는 이유는 단순히 그들의 인구분포 현황만 살펴보더라도 이해할 수 있다. 19세기초 전세계의 유대인 중 80%가 유럽에 분포했으나 1930년경에는 60% 그리고 현재는 그들 중 대부분이 아메리카 대륙에 거주하고있다. 숫자로만 생각했을 때 단순한 민족의 이동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러한 결과는 유럽에서의 유태인 박해에 기인한 것이다. 수많은 유태인들이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아우슈비츠 수용소 등으로 끌려가 잔혹히 학살되었다. 400만 유태인 생명의 불씨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사그러들어갔다. 이러한 이유로 다수의 유태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하게 된 것이다.그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남긴 유태인 학살은 인류가 자행한 가장 잔혹한 행위 중 하나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 이러한 그들의 삶은 마치 수많은 침략과 압제 속에서도 꿋꿋이 이겨내온 우리의 역사와 교감한다. 이처럼 굴곡 많고 억울한 죽음에 직면했던 그들의 삶이 극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배경으로 수많은 영화가 제작되기에 이른다.



[아우슈비츠 형무소의 모습,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했던 역사의 현장.]

영화 <마지막 한 걸음까지>의 리뷰에서 유태인과 독일인의 관계를 사뭇 다르게 표현한 점에 대해 이야기 했었다. 유태인을 다룬 대부분 영화의 기본 설정이라는 것이 유태인의 역경과 고난 그리고 독일인(나치)의 잔혹함을 묘사하는데 집중해왔다. 하지만 <마지막 한 걸음까지>에서는 이러한 유태인의 삶이 아닌 학살을 자행하는 주체였던 독일인의 삶과 역경을 묘사했는데 이를 통해 그들의 행위는 잔혹했으나 그들 개개인 하나하나까지 잔혹하지는 않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 반면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기존의 관점에 순응한다. 유태인의 역경과 독일인의 잔혹함이라는 기본 설정은 유지했지만 그 표현방식은 매우 색달랐다. 본 영화의 감독이자 주연으로 등장한 로베르토 베니니는 잔혹함이라는 관점에 집중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안에서 웃음을 유도하려는 시도를 한다. 이러한 시도는 오히려 영화의 감동을 증폭시켰다. 시종일관 웃으며 영화를 보던 관객은 결국 마지막에 눈물을 보게 될 것이다.



영화 속 귀도는 얼마나 밝은 인물이었던가. 참혹한 수용소 생활 속에서도 아들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의 유쾌함은 단순히 그의 명랑한 성격의 증거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가족을 지키겠다는, 자신의 아들만은 역사의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그의 피나는 노력이라는 것이 더 적절할 듯 싶다(물론 그는 본질적으로도 유쾌한 사람이다). 그는 그가 죽기 직전까지도 그저 아들에게 게임일 뿐이라며 아들의 웃음을 이끌어낸다. 그가 생각하는 사랑은 사랑하는 이들의 웃음을 이끌어 내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그는 노력했을 것이다. 그는 항상 최선을 다한다. 수용소에서 자신과 아들의 무사함을 아내에게 알리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수용소 내 방송을 한 일이나 그녀와의 추억의 노래를 몰래 축음기를 통해 흘려보내는 모습은 절망 속의 낭만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과 아내에 대한 사랑이 묻어난다. 영화 <대부>를 통해 알 수 있었듯이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와 같이 가부장 중심의 사회이다. 가족간의 유대를 중시할 뿐만아니라 가정의 형태 또한 우리나라의 가정 형태와 상통하는 면이 매우 크다. 그래서인지 영화 <대부> 속에서 가장의 모습은 근엄하기 이를 데 없다. 실제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가장의 전형은 아직까지도 권위있고 근엄한 모습으로 그려지기 일쑤다. 무엇이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시종일관 유쾌하고 밝은 모습의 가장 귀도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아버지 그리고 남편의 모습이 아닐까? 최소한 본인은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다.



아내 도라에 대해서도 잠깐 생각해보자. 영화의 배경은 이탈리아였다. 도라는 이탈리아의 부유한 가정의 딸이었지만 사랑하게 된 귀도와 결혼을 결정한다. 전쟁 발발 후 그의 남편과 아들이 수용소로 끌려가게 되자 그는 유태인이 아니었음에도 그의 가족을 따라 수용소행을 선택한다. 사실 이탈리아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동맹국으로 이탈리아인은 강제 수용의 대상이 아니었음에도 그녀는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이다. 물론 영화 시나리오일 뿐이지만 어찌 보면 무모했던 이러한 행동은 진정한 가족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 준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품에 안게 된다.


[귀도의 노력으로 다시 마주하게 된 두 모자]

어떤 이들은 영화를 보고 주인공 귀도에게 인생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영화의 제목이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것이 잔인했던 그들 역사의 역설적 표현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분명 귀도에게있어 그의 인생은 아름다웠다. 전쟁 발발 전에는 계급에 대한 갈등을 겪었고, 유태인이라 모멸감을 느껴야 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그리고 전쟁이 발발하면서 그는 유태인이기 때문에 강제 수용되었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그의 인생은 아름다웠고, 행복했다. 한 여인을 진정으로 사랑했고, 가족을 위해 헌신한 그의 인생에서 가치를 따지고 아름다움의 여부를 따지는 것은 그의 죽음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그보다는 그의 삶을 대하는 태도, 죽음 이전의 삶에서 그는 충분히 사랑했고 충분히 만족했을 것이다. 아마도 하늘에서 그는 무사히 끌어안는 그의 아내와 아들의 모습을 보며 흥겹게 어깨춤을 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이 모습이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귀도라는 인물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찐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명랑하고 가슴 따뜻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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