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의 표준 줌 렌즈는 없다, 크롭의 진리 축복이
캐논 EF-S 17-55mm F2.8 IS USM
면세점에서 정신을 차려보니 처음 보는 렌즈가 들려 있더라.
내가 미쳤나보다. 무엇에 홀린 것인지 질러버린 것이다. 단 한 번도 내 손에 들릴 일 없다 생각했던 그것을 지금 손에 쥐고 있다. 내가 이것을 왜 샀을까 도대체. 예상치 못한 지출에 약간의 후회가 들지만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지우지는 못했다.
이탈리아로 떠나기 위해 인천 공항을 찾았다. 바다 건너 이국 땅을 밟기 위해 아주 잠깐 머무는 이 곳은 이미 먼 여정을 앞둔 수많은 여행객들로 북적거렸다.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곳을 싫어하는 나지만 공항의 번잡함은 언제라도 대 환영. 공항에서 이런 어수선함의 절정은 아마도 면세점일 것이다. 백화점만 가면 이상하게 기가 쭉쭉 빠지는 나는 면세점에서도 같은 기분을 항상 느껴왔다. 비행기 시간은 자정 남짓, 충분히 지쳐있던 나는 캐논 매장 앞에서 정신을 놓아버렸다. |
캐논 보급형 DSLR 600D를 사용 중인 나의 렌즈 구성은 번들렌즈와 시그마 삼식이 두개로 단촐하다. 삼식이는 대만족하며 사용 중인데 항상 표준 줌 렌즈와 광각 렌즈에 대한 갈증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부족한 사진이 어찌 장비 탓이겠는가, 부족한 실력 탓이지. 그래서 렌즈 구입은 항상 고려만 할뿐 실천에 옮기지 않았다. 그런 내가 인천 공항의 어수선함 속에서 캐논 매장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진열장을 둘러보던 나는 무엇인가에 홀린듯 이야기했다.
"17-55 좀 보여 주세요!"
그리고 그 후는 한편의 잘 짜여진 시나리오와 같았다. 주세요. 카드 여기요. 일시불이요. 안녕히계세요. 본격적인 여행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예상치도 못했던 큰 지출이다. 내가 왜 그랬지 하는 후회와 기대 그리고 묘한 만족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래 잘 쓰면 되겠지.
캐논 EF-S 17-55mm F2.8 IS USM가 내 손에 들어왔다.
크롭의 진리인 만큼 더 이상의 렌즈 구매는 없다(?)
처음으로 구매했던 렌즈 삼식이에는 후드와 UV필터가 장착 되어 있다. 사진 초짜인 내가 필터와 후드로 더 나은 결과물을 얻어 낼리는 만무하고 단순히 내 기준에 고가인 렌즈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 중이다. 삼식이는 기본 구성에 후드가 포함 되어 있었고 필터도 판매자님의 은총으로 무상 제공 받아 사용 중이다. 면세점이니 무상 필터 같은 이벤트는 없겠지만 축복이에도 후드는 당연히 포함 되어 있으리라 생각했다. 부담스러운 무게와 가격의 이 놈을 사자마자 이탈리아로 들고 가야하니 걱정이었다. 그래도 후드라도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박스를 열었고 이내 나는 좌절과 원통의 나락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후드가 없다. 정품 후드가 당연히 함께 있을 줄 알았지만 없었다. 상술의 캐논에게 후드라는 자비는 없었던 것이다.
확인해 보니 크롭 렌즈에 대해서 캐논은 후드를 별도로 판매하고 있었다. 역시 상술의 캐논, 후드는 풀프레임용 L렌즈에만 제공한단다. 크롭 바디를 사용 하는 나는 찌그러져 있을 수 밖에.
단단하고 견고해 보이는 캐논 EF-S 17-55mm F2.8 IS USM의 모습.
생각보다 크고 무겁다.
해외 여행을 위해 단 하나의 렌즈만 들고 가야 한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광각과 표준 줌 렌즈 둘로 양분된다. 난 광각이 없으니 축복이 하나만 마운트해 들고 다닐 계획이었다. 새로 들인 축복이에 마치 천군만마라도 얻은 것 같았다. 그런데 천군만마라서 인가? 이놈 엄청 무겁다. 솜털 같은 번들과는 비교가 무색하고 삼식이랑 비교해도 그 무게가 체감상 몇배는 무거운 느낌이다. 무거우면 충돌에 대한 충격도 당연히 클 수 밖에 없으니 여행 내내 이놈은 짐이었다. 바글바글 여행객 사이를 비집고 다닐 때면 축복이를 끌어 안고 다녀야만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다음 번 여행에는 무거운 축복이를 포기할 것인가? 당연히 아니다. 무거운 만큼 매력 덩어리인 이놈을 포기할 수 없다.
면세점에서 구매하자마자 개시한 축복이는 분명 번들보다 나은 성능을 보여줬다. 사진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번들로 찍을 때보다 쨍한 느낌이 좋았다. 찾아보니 전 화각에서 단렌즈 급의 해상력을 보여주는 렌즈가 축복이란다. 아쉬운 것은 내 부족한 사진 실력. 크롭용 표준 줌 렌즈에는 탐론 17-50, 시그마 17-50 그리고 축복이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가성비를 생각해 탐론과 시그마 렌즈를 구입한다. 나 또한 탐론과 시그마 렌즈를 구매하려했으나 본의 아니게 축복이를 구매하게 되었다. 분명 사진이 나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탈리아의 쨍한 햇살이 한 몫 했으리라. 여전히 광각에 대한 욕심이 있긴 하지만 이제 장비에 대한 욕심은 버려야 할 것 같다.
아래는 부족하지만 축복이로 찍은 사진들을 몇 장 올려보았다. 클릭하면 더 큰 사이즈로 확인할 수 있다.
축복이를 들였다. 예상하지도 못한 순간 생각지도 못하게 내 손으로 들어왔다. 80만원이 넘게 찍힌 카드 영수증이 덤으로 따라왔다. 장비 업그레이드에 대한 욕구는 끝이 없다 했던가. 내게 과분하기 그지 없는 축복이를 들였음에도 광각 렌즈가 또 눈에 들어오고 풀 프레임 바디가 눈에 들어온다. 리뷰를 적고 보니 축복이를 600D에 장착한 사진이 한 장도 없다. 따로 구매한 축복이 정품 후드 리뷰에서 후드와 함께 장착한 사진을 올려야겠다. 새로 구입한 렌즈로 열심히 찍어 열심히 포스팅 하리라 다짐하며 오늘 포스팅은 끝.
[Tip] 면세점의 각종 혜택을 이용하자!
신혼부부라면 신혼 여행시 '청첩장'을 준비해 공항으로 가자. 청첩장을 제시하고 면세점 멤버쉽(신라, 롯데면세점 등)에 가입하면 한단계 높은 등급으로 가입하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또한 당일 바로 사용 가능한 쿠폰북을 제공한다. 멤버쉽 혜택과 쿠폰북 및 기타 할인 혜택을 누리면 시중가보다 훨씬 싸게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단, 개인당 400달러 이상 구매하는 경우 귀국시 관세를 내야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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