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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리만치 높은 교육열, 가정의 뿌리를 뽑아낼 듯한 기세의 사교육비, 전국 고등학생 대학 진학률 84%, 학기당 500만원씩 뿌려대며 다닌 대학에서의 4년 그리고 청년실업.
이것은 현재 우리네 청년들이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사회 및 교육의 모습이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지난 15년 이상을 주변의 기대라는 엄청난 무게를 어깨에 짊어진채 이러한 취업난을 향해 앞만보며 질주해왔다.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잘못된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우리 대학생의 눈에서 피눈물을 뽑아내는 것일까? 물론,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사회적 문제라는 관점에서 광범위하고 다양한 문제들의 화학작용을 통해 나타난 결과물이다. 때문에 정확히 무엇이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주 무모하고, 또 거센 반발을 일으킬 수 있는 종류의 문제임에 틀림없다. 다만 필자는 오늘 이러한 문제를 '대학'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분명 이러한 현실에 대한민국에 무수히 많은 대학들 또한 한 몫 해왔다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새로운 계급으로 오르는 관문 대학
[대한민국은 조선시대와는 다르지만 분명한 계급사회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이다. 조선시대의 호패마냥 계급을 정확히 구분지을 명패나 신분 제도만 존재하지 않을 뿐 우리는 현재 계급사회 속에 살아가고 있다. 조선시대의 그것과 다른점이 있다면 신분 상승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각 계급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벽 넘어의 세계에는 그 하위 계급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삶이 존재한다. 이러한 벽은 지독히도 넘어서기 힘들다. 신분 상승이 가능한 계급사회에 속한 우리는 새로운 삶을 경험하기 위한 신분상승을 이루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나 역시나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닌게다. 이러한 신분상승의 통로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인식되어 왔던 것이 몇가지가 존재한다. 바로 일류대학 입학과 고시 패스이다. 그중 비교적 다수가 접근할 수 있었던 방법이 대학이었고, 이런 신분 상승의 욕구를 반영하듯 대학입학 열풍이 대한민국에 불어닥쳤다. 대한민국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대학이 존재하고, 대학 입학률 84%라는 전세계에 유례없는 비율을 만들어낸다.
대학만으로는 이룰 수 없게 된 신분 상승
대략 20 에서 30년 전에는 대학에 입학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느정도의 성공, 즉 신분 상승이 가능했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학에 입학할 정도의 여유를 갖지 못했다. 때문에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대분은 생업이라는 문제에 봉착해 대학이라는 꿈을 접기 일쑤였고 대학에 입학 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진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기존의 부를 가진 이들은 대학을 통해 그들의 위치를 더욱 굳건히 했고, 소수의 일부만이 대학을 통해 신분 상승을 이뤄냈다. 하지만 분명 이를 통한 신분상승은 고시에 비해 쉬웠고, 대학의 입학이 어려웠을 뿐 입학만 하면 완벽히 신분상승을 보장하는 비교적 확률 높은 장사였다. 그 후 IMF 이전까지만 해도 대학은 최소한 취업을 보장해 주는 통로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해왔다.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의 신분 상승 통로는 지독히도 좁아졌다. 우후죽순 등장한 무수한 대학들이 그나마 가장 넓었던 신분 상승의 통로의 입구에 자리잡아 그 통로를 비좁게 만들었다. 이리하여 대학은 더이상 신분 상승의 방법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그나마 SKY, 흔히 말하는 일류대 정도에나 입학해야 이러한 관문을 바라나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마저도 안타까운 것은 더이상 개천에서는 용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요즘은 있는 집 자식들이 공부도 잘하더라는 말이다.
어찌되었든 대학은 더이상 계급의 상승을 보장하는 통로가 아니다.
대학들의 무한 경쟁, 장사꾼이 된 대학
고등학교 당시 사회과 부도의 세계지도를 펼쳐보면 새끼 손가락 한마디 크기만 했던 대한민국에 엄청난 수의 대학교가 들어섰다. 이로인해 대학 무한경쟁 시대에 돌입하게 된것이다. 더이상 대학은 학교가 넋 놓고 있으면 학생들이 알아서 찾아주는 그런 공간이 아닌 게 되었다. 각 대학들은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나름의 방법을 고안해 내야만 했다. 이러한 대학간의 경쟁이 긍정적 효과로 나타나 대학의 교육 품질 향상 및 학생 복지 시설 및 제도 향상 등으로 나타났다면 더할나위 없었겠지만, 대학들은 이러한 방법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아나서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장사꾼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대학의 입장에서 학생은 더이상 교육을 해야 할 대상이 아닌 고객이 되었다. 그들 한명 한명의 존재가 곧 그들에게 이윤이 된 것이다. 학기당 500만원, 1년에 1,000만원이라는 거금을 제공하는 학생을 그들은 단 한명도 놓치고 싶지 않은듯 매년 하반기가 되면 각 대학들은 각종 타이틀을 걸고 홍보활동에 나선다. 온갖 리서치들을 들이밀며 자신들이 취업 1위 대학이다, 아니다 우리가 취업 1위인 대학이다, 우리가 최고 평가를 받은 대학이다, 학생 대부분이 장학금을 받고 다닌다 등 출처모를 결과들을 내세우며 학생 유치에 나선다. 각종 신문 및 포털 사이트에는 무수한 대학들의 광고가 넘쳐난다. 그놈의 취업률은 군대에 간 학생들까지 포함시킨다는 말이 나돌정도로 믿음직한 수치가 아닌데다 막상 입학해 보면 대부분이 허위광고이거나 그 적용 범위가 실제보다 훨씬 작기 마련이다. 차라리 이러한 노력을 교육의 질적 향상에 투자한다면, 그 뿌리가 더욱 튼튼해 진다면 당장은 힘들더라도 언젠가 학생들이 스스로 찾는 대학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학점을 파는 대학교
취업난이 극심하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학생들은 심지어 대학에 속아 입학하기까지 했다. 학생들은 이러한 노림수와 취업난에 대한 해결책과 보상을 바랄 수 밖에 없었고, 대학의 입장에서는 각 1명당 천만원을 보장하는 이들을 한명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대학은 학점을 팔기 시작한다.
원래 대학은 학점을 파는 공간이다. 사실 다소 교육기관을 비하하는 말일 수도 있겠으나, 학생들은 학점을 얻고, 학위를 따기 위해 대학에 입학을 하니 사실 대학은 학점을 파는 공간이다. 하지만 지금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학점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들이 이러한 현실에 대한 보상으로 높은 학점을 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서울의 모 대학은 평균 졸업 학점이 A 이상인 학생의 비율이 50%라고 한다. 또 어느 대학은 40%, 또 다른 어느 대학은 학생들의 42%가 평균 A학점 이상을 받으며 졸업을 한다. 대학의 마구잡이식 고학점 남발 정책은 일부 공정한 학점을 제공받는 대학의 학생들에게 피해를 끼칠 뿐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 전체로 봤을 때, 대학생들을 오히려 죽이는 정책이다. 특히나 이러한 학점 남발을 일류대가 자행한다면 그 피해는 커질 수 밖에 없다. 어찌되었든 고학점 남발 정책은 학생들을 더이상 학점으로 판가름할 수 없게 만들었고, 기업 입장에서는 좋은 인재를 구분할 새로운 기준을 찾게 되었다. 이러한 방법으로 처음에 등장했던 것이 바로 TOEIC이었고 이로인한 구분은 지난 몇년간은 가능했다. 하지만 학점을 따기 쉬워진만큼 학생들은 TOEIC에 보다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어느덧 대부분의 학생들이 TOEIC에서 고득점을 받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더이상 TOEIC을 유능한 인재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으로 보지 않는다. 그리하여 최근에는 TOEIC SPEAKING과 OPIC등의 점수를 기본적으로 제출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대학교육의 질 향상과 고학점 남발이라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한 새로운 기준인 스피킹 테스트도 머지않아 그 효용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더이상 대학은 핵심 문제를 피하고 대안들 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해서는 안된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할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대학 교육
필자는 현재 대학 4학년에 재학중이다. 졸업을 현재 한 학기 남겨두고 휴학을 해 많은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얼마전 고려대학교에서는 한 여학생이 대학 교육 현실을 비판하며 자퇴를 했다. 필자도 대학 교육에 대한 회의가 크지만 그렇다고 자퇴를 할만큼 위인이 되지는 못한다. 다만 이렇게 내가 원했던 현실을 개인 블로그에나 끄적이는 정도의 발악만을 해볼 뿐이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썩 공부에 흥미가 있거나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대충대충 해왔고, 수능도 어찌저찌 이래저래 대충 봤다. 그리하여 서울에 있는 그런저런 대학에 입학을 했다. 대학 안에서의 생활은 매우 재미있었다. 새로운 친구들, 성인이 되었다는 즐거움, 새로운 경험들. 하지만 사실 대학에서의 생활에는 이보다 더 많은 기대를 품고 입학을 했다. 고등학교시절 교과서에서 대학을 상아탑이라 부르며 학문 연구와 탐구의 장이라 이야기 했던 지문을 접했었다. 그래서 필자는 대학이 그러한 줄만 알았다. 무엇인가 연구하고 탐구하며 도서관에서는 전공에 대해 공부하고,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는 이러한 과정이 필자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은 전공이 아니라 TOEIC이었고, 대학은 그저 고등학교의 연속이었다. 필자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라 필자의 대학 친구들, 다른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 특히나 일류대에 진학한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모두 학문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 강의를 들을 필요도 없었다. 강의는 그저 학점을 받기 위한 과정에 불과했다. 굳이 강의를 듣지 않아도 벼락치기를 통해 학점을 받을 수 있었다. 일부 강의는 수십년간이나 같은 강의를 해온 교수들 덕분에 흔히 말하는 족보만 몇년치 찾아보고 시험을 보면 오히려 열심히 강의를 들어온 이들보다 더 높은 학점을 받을 수 있었다. 이것은 필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대학에 재학중인 학생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저 높은 학점을 받는 것에 안주했고, 대학은 그저 높은 학점을 뿌려대는 것으로 이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필자는 어느덧 4학년이 되었다.
학점을 파는 대학과 발전하지 않는 교수, 그에 안주하는 대학생이 만들어낸 삼중주의 결과는 위태위태한 대한민국의 경제이고, 현재의 취업난이다. 교육이 곧 미래라는 이야기는 보편화 된 사실이지만, 이 이야기를 우리나라에 적용하기는 두려운 것이 현실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교육과 높은 교육렬을 이야기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일에 대한 언급일 뿐이다. 각종 포털 사이트에 이슈화 되는 일들에 달리는 댓글을 보자면 서로 자기가 더 많이 알고 옳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이들이 존재한다. 그들 중 대부분은 해당 이슈에 대해 생각만 있을 뿐 실제로 그것들을 겪어보지 못한 이들이 태반이다. 우리는 직접 경험하고 머리로 그리고 가슴으로 뼈저리게 느낀 이들의 말을 들어야 할 것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직접 경험해 본다면 대한민국 교육에 대한 생각이 바뀔지, 아니면 옳았다고 느낄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교육이 근본적으로 변혁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 현재로서는 대학의 존재가 무의미하다. 그저 대졸이라는 위치와 학위를 얻기위함이 대학의 존재이유이다. 대학이 학점을 파는 게 아니라 공정한 기준으로 학점을 주기 시작하면 오히려 대학생들은 자신의 전공에 집중 할 수 있고, 기업이 원하는 인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취업 희망자가 이렇게나 많음에도 기업에서 뽑고는 싶은데 뽑을 만한 사람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타난 결과이다. 스펙쌓기가 취업의 길로서 자리매김한 이유는 바로 학점을 통해 인재를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이고, 이러한 스펙도 더이상 무의미한 지경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고, 이것은 대학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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