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방문을 통해 깨달은
여행지 박물관을 제대로 여행하는 방법
박물관이 재미가 없다고? 그렇다면 여행 전 공부를 해보자.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지 9개월이 다 된 것 같은데 어찌나 게으른지 지금도 그때 이야기를 다 풀어내지 못했다. 블로그 속의 나는 피렌체에서 마지막 여행지 로마로 아직 이동하지 못하고 머물러 있다. 이탈리아 여행기를 모두 풀어내고 훌훌 털어버리면 좋겠건만 아쉬움이 아직도 많이 남았나 보다. 쉴틈 없는 일정의 틈에 내 몸을 꼭 끼운채 숨 막히는 하루하루를 견뎌내기가 녹록치 않아 그 때가 더 간절한 탓일지도.
아침에 눈을 떴는데 창문 너머로 시끌벅적한 광장의 소리가 스며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반팔 티셔츠에 몸을 우겨넣고 카메라와 작은 가방 하나 걸쳐 멘 채 무엇에도 쫓기지 않았던 6월의 그날이 요즘 그 어느 때보다 그립다. 오늘 피렌체에 머물던 블로그 속의 나를 로마로 보내려한다. |
여행의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 지역의 문화를 보고 경험하는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이들이 있는 반면 단순히 현실 도피의 기회로써 여행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아마도 이 구분에서 후자에 속할듯 싶다. 여행을 현실 도피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보통 여행 마지막 날이 되면 '백일 휴가를 복귀하는 이등병' 마냥 입맛이 없고 우울함을 느끼기 십상이다. 돌아올 게 무서워 떠나기 싫다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니 어지간히도 현실이 불만족스러운 모양이다. 평생을 여행하듯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탈리아 로마를 여행하면 꼭 한번은 방문하게 되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 시국'
바티칸 시국의 면적은 0.44㎢ 이다.
오랜 시간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바티칸 시국에 들어갈 수 있다.
길이 놀라울 만큼 긴데, 조금이라도 빨리 들어가려면 아침부터 서두르는 것이 좋다.
여행을 가면 여행지의 박물관을 꼭 찾는 사람들이 있다. 여행을 현실 도피가 아닌 견문 확대의 수단으로 삼는 이들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문화 유적과 박물관은 곧 필수 코스. 하지만 여행이 도피의 수단인 네게 박물관은 크게 인상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탓인지 감정이 메마른 탓인지 예술작품이나 시대의 유물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덕분에 좀처럼 집중도 되지 않았다.
바티칸 박물관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티켓을 구매해야한다.
티켓에는 라파엘로의 '아테나 학당'이 그려져 있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 일정에도 박물관이라고는 '바티칸 박물관'이 유일했다. 피렌체에 가면 '우피치 미술관'을 꼭 방문하라는 지인의 말도 있었건만 우리 일정에 우피치 미술관은 낄 자리가 없었다. 여행 중 유일하게 방문한 바티칸 박물관은 그저 편리하다는 이유 하나로 투어를 신청했다. 그런데 이 투어로 인해 박물관에 대한 내 편견에 미세한 금이 갔다. 최소한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바티칸 박물관은 다양한 이야기를 품은 작품들로 가득하다.
박물관은 지루하다는 다소 편협했던 생각과는 달리 투어 가이드와 함께한 바티칸 박물관은 제법 흥미를 자극했다. 바티칸 박물관을 수십번 방문했다는 이 가이드는 작품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를 외운 대본 읊어대듯 쏟아냈다. 그럼에도 그의 이야기는 오래된 박물관의 매력을 끌어 올리는데 꽤나 효과적이었다. 그의 설명이 없었다면 그냥 눈으로 훑고 지나쳤을 법한 작품들도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바티칸 박물관에서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작품.
자세히 보면 '박명수'가 보인다.
라파엘로의 '아테나 학당', 소크라테스, 플라톤 같은 수많은 학자들 뿐만아니라
라파엘로 자신과 그의 여자친구가 그려져 있다.
가이드와 함께한 바티칸은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했다. 박물관이 아니라 흥미로운 스토리를 쏟아내는 한편의 다큐멘터리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가이드의 설명이 아니었다면 바티칸 박물관의 '박명수'에 대한 이야기, 수많은 학자들이 그려진 '아테네 학당'에 라파엘로의 여자친구가 그려져 있다는 사실 등 작품에 얽힌 뒷 이야기들을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이러다 보니 눈 앞의 작품들 보다 되려 가이드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바티칸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은 가이드와 함께하지 않았는데 그 웅장함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느낌이 없더라. 작업 중 떨어지는 석회가루와 물감에 눈이 멀 지경이었다는 미켈란젤로에게 미안할 만큼이나.
마치 조각처럼 보이는 바티칸 박물관의 천장.
모두가 조각이 아닌 그림이다.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보기 위해 시스티나 성당을 향한다.
시스티나 성당은 사진 촬영이 불가해 사진이 없다.
이처럼 투어 가이드와 함께 박물관을 돌아다니다 보니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지루하게 느껴졌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평소 단 한번도 박물관이 즐겁다고 느끼지 못했건만 이번 바티칸 박물관은 달랐다. 그 차이가 무엇이었을까? 그간의 박물관, 전시회 관람과 바티칸 박물관 방문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가이드의 유무였다.
가이드 투어가 좋은 방법이라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이드가 없었다면 별다른 생각 없이, 기껏해야 '우와 잘그렸다~' 정도의 감탄이나 하면서 한바퀴 둘러보고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가이드라는 요소가 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가이드가 제공한 것은 재미가 아닌 지식이었고 그 지식과 눈앞의 작품들이 내게 재미를 선사한 것이다.
내가 박물관에서 재미를 느끼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바로 작품에 대한 지식이었고, 가이드는 비용을 대고 이 지식을 쉽게 얻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었던 것. 그리고 이 지식들은 여행을 더욱 풍요롭고 즐겁게 만들었다.
산피에트로 대성당(성베드로 성당) 위에 놓인 구와 동일한 크기의 작품이
바티칸 박물관 외부에 전시되어 있다.
바티칸 박물관 외부에도 솔방울 조형물 등
유명한 작품들이 가득하다.
박물관을 싫어하는 내게 바티칸 투어는 신선한 경험을 선사했다. 단순히 보는 것과 알고 보는 것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고 앞으로 여행 일정에 박물관, 미술관이 있다면 최소한 책 한권은 읽어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힐링을 위해 떠나는 여행에 공부가 웬말이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공부가 여행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물론 쉽고 편하게 비용을 지불하고 매번 투어를 활용할 수도 있겠지만 인문학 공부가 별다른 것이겠는가. 여행가기 전 여행지의 문화와 역사를 공부하고 박물관에 들르기 전 작품에 대한 책을 읽어 보는 것이 인문학 공부 아니겠는가.
바티칸 박물관 팁
보통 전시회나 박물관은 사진 촬영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반면 바티칸 박물관은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다만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볼 수 있는 시스티나 성당만은 예외다. 시스티나 성당에서의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바티칸 박물관 내부에서 사진 촬영이 가능하긴 하지만 플래시는 자제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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