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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REVIEW/영화

그랜 토리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매력에 빠지다.

by in사하라 2012.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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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 토리노, 오랫만에 괜찮은 영화를 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그의 매력에 빠지다.

 
너무 흥분되지도, 너무 감상적이지도 않게 그렇게 영화 한편을 쭉 지켜 보았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감독인 그는 전형적인 미국인 그 자체입니다. 보수주의자이자 공화당의 열렬한 지지자인 그는 정계에도 진출한 바 있었죠. 영화 속 주인공, 월트 코왈스키는 그런 그의 실제 모습이 고스란히 전이 되어있는 듯 합니다. 영화 속의 그는 '미국 현대화의 상징' 포드에 자신의 한 평생을 바쳤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도요타의 차를 모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짓는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보수적인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영화 도입부에서 중반부까지 그는 시종일관 백인우월주의라는 관점으로 주변의 중국계 이민자들을 바라봅니다. '개를 먹는 비상식적인 인종들', 이것이 그의 눈에 비친 동양인의 모습이죠. 이런 모습들이 부각 된 후 영화의 전개는 월트 코왈스키의 그들에 대한 심리의 변화로 관점을 옮기고, 그의 숭고한 희생으로 영화를 마무리 짓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보수주의자이고 공화당의 열렬한 지지자라는 사실은 이미 위에서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라크 전쟁을 반대했고, 그것을 '큰 실수'라 지적 했다고 합니다. 보수이자 공화당의 지지자인 경우는 대게 이라크 전쟁을 찬성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합니다. 그는 그들과 같이 오른편에 섰지만 그들과는 다르게 올바른,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랜토리노는 이런 그의 이념적 사상을 반영시킨 수작일까요? 아니면 여든이라는 나이가 선과 악의 본질을 보게 만든 것일까요? 



선과 악
현대인들은 명확한 개념을 사랑합니다. 어떠한 본질에 대해 우리는 우리의 언어로 항상 정의를 내리곤 합니다. 본질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모 아니면 도' 식의 확실한 구분을 원하게끔 만들었고, 이는 흑백논리로 이어졌습니다. 성악설에 힘을 싣고자 함은 아니나, 인간은 인간이라 일컬어지기 이전부터 우리는 적을 만들어 왔습니다. '나와 같지 않으면 다르다'라는 개념에 부합하면 그들은 적이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은 이분법적 사고의 모토가 된 것이죠. 우리는 '보수'가 아니면 '진보'라 단정 짓고는 합니다. 중도를 찾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죠. 혹은 무지에 의해 구분짓지 못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또한 그 개념에 명확히 다가서지 못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찌되었든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보수'와 '진보', '백인'과 '유색인종'의 구분을 넘어서는 선과 악의 구분을 바라보며 이 영화를 만들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와 다른자가 적이되고 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올바르지 않은 것을 악으로 볼 수 있는 시야를 세월이 그에게 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만의 잣대(보수, 진보)가 아닌 인간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시작 된 선과 악의 구분이 영화에서 말하는 진정한 구분법일 것 같습니다.


| 그랜토리노 예고편


 

구분짓고 나누어 다툼을 만드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구상 모든 갈등과 모순, 오류 따위는 전인류가 서로를 구분짓지 않고 하나의 공동체로 생각했을 때야 비로서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이 글은 이전에 작성했지만 공개만 해두고 발행하지 않았던 글을 수정해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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