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출생-사망 : 1924년 1월 6일 (전라남도 신안) - 2009년 8월 18일
가 족 : 배우자 이희호, 장남 김홍일, 차남 김홍업
학 력 : 모스크바대학교외교대학원 정치학 박사
수 상 : 2000년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노벨평화상
2007년 제1회 자유상
김대중 전 대통령(85)께서 서거하셨습니다. 올해는 유독 슬픈 소식들이 줄잇는 것 같습니다. 시대의 별들이 서쪽하늘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시대의 별들은 그 별을 바라보는 이들의 희망이었습니다. 우리의 희망이 지고 있군요.
많은 이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조금만 더 빨리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면 우리네 대한민국에 더 많은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 더 열정적이고 조금 더 우직했던 젊은 시절의 그분은 투옥되어 수감생활을 했고, 정치적 망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광주민주화 항쟁을 볼모로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듯 그분의 젊은 시절은 낭비 아닌 낭비가 되고 있었습니다. 허나 그 분은 고희가 넘은 연세에 대통령에 당선 되었습니다.. 어렵게도 얻은 대통령이라는 직책이었습니다. 무려 4번의 도전. 그럼에도 많은 업적을 남기셨지요. 특히나 광복 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 최초의 노벨평화상은 의미가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했던 그분이셨기에 우리들이 그토록 많은 기대를 하였던 것입니다. '아직은 가실때가 아니다'라는 말이 지금 인터넷에 떠도는 우리들의 여론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제 그분을 놓아드려야 합니다. 오랜세월을 타인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오셨기에 우리는 놓아드려야 합니다. 이제는 저 위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만들어가야지요. 그래야 할 것입니다.
필자는 이 장면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비록 내 살아온 시간은 25년으로 짧지만 태생이 태생인지라 그분의 행적은 언제나 귀로, 눈으로 듣고 느껴왔습니다. 그분이 이리도 오열하시는 모습을 본적이 없었습니다. 연세가 연세이신지라 많이 여리고 약해지셨을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분의 눈물 뒤 숨은 속 뜻은 진실로 바라보는 이들이라면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은 대한민국을 품을 만큼 큰 그릇이셨습니다.
부디 편히 잠드시길...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in사하라 > 이런저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랫만에 블로깅 :< 본문 폰트는 도대체 어떻게 -_-;; (11) | 2009.09.21 |
---|---|
제2기 한국지식재산보호협회 블로그 기자단 모집 (0) | 2009.09.20 |
[공모전] 숨은 손글씨 찾기 공모전 (6) | 2009.08.17 |
허경영을 논하다 그리고 Call me (4) | 2009.08.15 |
김민선, 미니홈피 광우병 발언에 억대피소 (4) | 2009.08.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