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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REVIEW/영화

연민정은 애교였다, 최고의 악녀를 선사한 추천 스릴러 나를 찾아줘

by in사하라 2014.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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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정은 애교였다, 최고의 악녀를 선사한 나를 찾아줘

데이빗 핀처 감독이 선사하는 최고의 스릴러

 

 

한참 심야 영화에 재미를 붙여 거의 매주 영화관을 찾다시피 했는데 근래에는 볼만한 영화가 참 없더라.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인투더스톰이니 거의 2개월만인가?
사실 우리는 집에서 주말의 여유를 만끽할 계획이었다. 지저분 하고 파리 날리는 음식점의 메뉴판 마냥 매력 없는 개봉작 리스트에서 우연찮게 데이빗 핀처라는 이름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결국 우리는 일요일 늦은 오후 선선한 가을 바람에 식은 손을 달래 줄 라떼 한잔씩을 감싸 쥐고 극장을 찾았다.

 

 

 

나를 극장으로 이끈 데이빗 핀처 감독

이름 하나만 믿고 극장을 찾기도 참 오랜만이다. 세븐을 시작으로 파이트 클럽,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가꾸로 간다, 소셜 네트워크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에 실망한 적이 한번도 없었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그에 대한 대중의 신뢰감은 철옹성 마냥 견고해 보인다. 지금 극장가에 볼만한 영화가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나를 찾아줘의 흥행은 데이빗 핀처라는 이름에서 부터 시작되고 있으니 말이다. 대중의 기대에 응답하듯 그의 연출력은 나를 찾아줘에서도 어김없이 발휘 되었다. 150분에 이르는 런닝 타임이 전혀 길지 않게 느껴진다. 시작부터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처음부터 사건이 터진다.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면 긴장감이 떨어지는 스릴러 특성상 대부분 영화 말미에 반전을 가미하지만 영화 중반에 사건에 대해 온전히 오픈한다. 그렇다고 반전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의 목을 조이듯 긴장감을 이어간다.

 

 

완벽 삶을 위한 위태로운 줄타기

근래 본 최고의 악녀를 꼽으라면 나를 찾아줘의 에이미 던을 꼽겠다. 왓따 장보리의 연민정은 애교였다. 에이미는 어려서부터 완벽한 삶을 강요 받아왔다. 그녀의 부모가 성공을 위해 만들어낸 가상의 어메이징 에이미는 현실의 에이미와는 같을 수가 없었고 이러한 괴리감이 그녀의 성격 장애를 유발했을 것이다. 완벽하길 강요받던 그녀는 자신의 사랑도 그래야만했고 교제한 남자들을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도록 강제한다. 이런 강압을 견디지 못하거나 완벽함에 부합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치밀하게 복수한다. 완벽이라는 이름 아래 그녀는 완벽한 악녀로 성장한다. 그녀의 치밀하고 완벽한 계획도 삶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그 자체로의 변수에 결국 무너지지만 이 놀랍도록 치밀한 악녀는 의연하게 대처한다.

 

 

디테일의 매력

나를 찾아줘의 큰 흐름은 에이미의 실종과 이를 풀어가는 닉의 이야기이지만 이 영화 디테일이 살아있다. 특히 에이미가 실종 된 후 닉에 대한 언론의 마녀 사냥은 다소 과장됐지만 이 시대의 언론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상세히 그려낸다. 언론이 한 개인의 삶을 얼마나 쉽게 망쳐 놓을 수 있는지 그리고 또 그렇게도 무책임한지. 무심코 던진 돌에 어떻게 개구리가 맞아 죽을 수 있는지 자세히 보여준다. 닉의 무혐의가 입증 된 후 "그땐 어쩔 수 없었잖아요~"라며 웃어 넘기는 언론인의 이중성에 치가 떨린다. 우리네 그것들과 너무도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언론은 누군가의 의중이 반영된 조작 버라이어티 쇼나 다름 없어 보인다.

 

 

Gone Girl vs 나를 찾아줘

영화의 시작과 함께 가장 눈에 띈 부분은 바로 제목이 화면에 떴을 때 이다. 외국 영화를 우리나라로 가져와 개봉할 때 보통은 그 이름을 우리 식으로 바꾸고는 한다. 그대로 해석해 옮기거나 발음 그대로 적기도 하지만 누군가가 영화 내용에 따라 임의로 변경해 올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때로는 어색하고 무리한 제목 짓기로 비난을 받기도 한다. 나를 찾아줘의 영어 제목은 'Gone Girl'이었다. 우리 말로 직역하면 사라진 소녀. 그러나 나를 찾아줘라는 이름으로 개봉한 것이다.

 

책 원작이 있고 국내 출판 당시 나를 찾아줘로 그 이름이 변경 된 전례가 있었다는 것은 영화를 보고나서야 알았다. 영화 수입사 쪽이 아닌 출판 업계에서 이름을 변경한 탓이었을까? 처음에는 우리식 변경이 거슬렸지만 막상 영화를 다 본 후에는 나를 찾아줘라는 제목이 더 적합해 보였다.

 

 

영화의 시작과 끝

나를 찾아줘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영상은 동일하다. 자신을 베고 누운 에이미를 바라보며 닉의 나레이션이 깔리는 장면이다. 정확히 동일한 장면이지만 이 같은 장면이 처음과 끝에서 전달하는 느낌은 완벽하게 다르다. 같은 장면이지만 시작 단계에서 관객은 에이미의 모습을 보며 신비로우면서도 깨끗한 느낌을 전달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기 직전 에이미를 바라보면 소름이 돋는다. 150분이라는 시간동안 졸지 않고 영화를 감상했다면 누구나 똑같은 감정을 느꼈으리라...

 


 

영화가 끝났다. 이 영화 결말이 참 과감하다. 원작도 마찬가지의 결말일까? 책의 결말을 알아보기 위해 검색했지만 대부분의 블로그는 낚시성 포스팅으로 난무했다. 마치 제목은 원작 소설의 결말을 적어 놓으것 마냥 적어 놓았지만 막상 내용은 결말에 대한 이야기는 쏙 빼놓았더라. 결국 구글에서 영어로 검색한 끝에 책의 결말과 영화의 결말이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말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하 하지는 않겠지만 이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도 끝난 것 같지가 않다. 섬뜩함이 여전히 곁에 남아있는 느낌이다.

 

극장에서 스릴러를 본 것도 참 오랜만이다. 데이빗 핀처의 스릴러가 나를 극장으로 이끌었고 간만에 제법 긴장하며 영화 한편을 보고 나왔다. 스릴러 팬들에게 강추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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